동강 풀 꽃 피는 언덕

나의 이야기

할머니 잘못 아닙니다.

앤 셜 리 2024. 2. 20. 22:24

이 글은 옛날 10년도 더지난 .
저를 딸처럼 챙겨주시기에 저도 친정어머니처럼 따랐던 이웃에 사셨던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할머니 잘못이 아닙니다.

벨을 누르자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 주신다
은빛 머리에 꼿꼿하게 올이선 하얀 모시
적삼을 입은 95세 어른이다
건강한 모습에
"할머니, 건강하시네요라고 인사를 드리니

-그렇죠 뭐

- 사람이 나이가 들면 아파야 정상인데 난 왜 아픈 데가 없는지 몰라
이 귀신같은 꼬락서니로 왜 이렇게 오래 사는지 몰라.
건강한 것이 죄인양 정색을 하고
말씀하신다
"할머니! 요즘 유행어가 있어요
"구구팔팔이삼사라고요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만 아프다 돌아가시는 거 말하는 거예요"
-그건 팔자 좋은 늙은이들이나 하는 말이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로 사는
나에겐 해당되는 게 아니에요
세상이 재미있어 저절로 살아지는 사람들 얘기지요
그런 사람들은 세월을 거스르고도 싶을 거예요
- 난 사는 것이 무거운 수레를 끄는 것처럼 힘들어요
" 요즘 노인정엔 안나 가세요?
(.....)
심심하고 답답하면 가끔 나가죠
"운동삼아 자주 나가서 놀다 오시지 그래요~"
- 평생 운동이라곤 않고 살아도
이렇게 오래 사는데.." 휴~~
말도 말라는 표정이다

점심을 해놨으니 함께 먹자 신다
"아니에요~저 방금 먹고 오는 길이예요
-아이 나랑 조금만 먹고 가~
" 제가 전화로 미리 말씀드렸잖아요
집에서 점심 먹고 간다고"
2시에 유치원으로 아이도 데리러 가야 되어요
죄송해요~할머니!..
다음엔 꼭 할머니와 함께 식사하고 갈게요~
"대신 저와 함께 참외 깎아 드셔요~"
반으로 자른 참외를 수저로 긁어 어찌나
달게 드시던지..

-바쁜 양반이 쓸데없는 늙은이까지 찾아다니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네요
"무슨 말씀을 하세요~"
할머니 같은 분이 여기 계신 걸 몰라서 못 찾아오지 알면 찾아오는 사람들 많을걸요
전 할머니가 뵙고 싶을 때마다 뵐 수 있어 좋은데요"
그리고 할머니한테 우리 전통 음식등
배울게 많거든요

젊으셨을 때 할머니는 능력 있고 성실한
남편을 만나
가정부가 자릿기까지 떠다 잠자리를 봐드릴
정도로 호강했던 분이다
할머니는 아들이 없고 따님 하나만 두셨다
서울 신설동에 사시며
한 달에 쌀 몇 가마를 먹을 정도로 이웃들이며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상주가 고향인 할머니는 고향에서 먹고살겠다고 보따리 싸들고 올라온 사람들을 먹여주고
재워 주는 건 물론
풀빵 기계를 사주던가 일자리를 소개해주던가
이모저모로 살 궁리를 해 내보냈다는 따님 얘기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헌 구두


어느 해 종친들의 모임에서 집안 조카를 양자로 들이라는 의논이 있은 후
조카자식을 호적에 입적시키고 할아버지 늘그막에 사업체까지 물려주었다
그때도 할머니와 알고 지낸 나는 재산 한 번에 물려주시면 안 된다고 말렸는데도
" 아니에요~ 위에서 잘하면 밑에 사람은
저절로 잘하게 돼 있어요~" 라면서
할아버지가 돌아 가시자 재산을 몽땅 양자에게 물려주신 후 할머니의
불행은 시작.
산전수전 격지 않은 분이라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순박한 분이다. 내가 잘하면 남도 잘할거란 믿음을 철통같이 알고 계셨다
세상이 당신 마음 같은 줄 알고 있었다

이후,
며느리의 구박은 시작되었고 한집에서 밥도 따로 해 먹고 어쩌다 증손주가 놀러 와도
아기 함부로 만진다며 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게 하여 기막힌 세월을 보내다
아들에게 사정사정해서 이천만 원(그당시)짜리 원룸을 얻어 나오게 되었다
조그만 원룸에서 내발등 내가 찍었다며 가슴을 치면서도 산목숨 살아야 되니까
재래식으로 콩나물을 길러 팔았다
(이때 판로는 내가 맡았는데 한번 먹어본 사람은 콩나물 나올 때마다
달라는 부탁이 줄을 이었다)
물 주기에 밤잠을 설쳐도 까만 시루에 소복하게 올라오는 샛노란 콩나물들이
자라는 재미에 용돈도 벌어 쓰며 바보 같았던 자신을 잊어가고 있었다


그것도 복이라고 원룸 주인의 은행 부도로 집이 경매로 넘어가 버렸다
전입신고를 안 해놓은 할머니는 이천만 원을
한 푼도 못 받고 나와
지옥 같은 아들 집으로 다시
들어가야만 했다

한 달 용돈 오만 원에서 정부에서 노인수당 삼만 원 나온다고 이만 원으로 깎아도
오래 사는 내가 죄인이지 하며 작은 쪽방에 갇혀 모진 세상을 살아 내는 할머니
내 앞에서나 응석 겸 저렇게 말씀하시는 거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노인이심에도 자세도 곧으시고 말씀도
당당한 분이다
몸은 개천에 있는 듯해도 마음과 정신만은 용상에 있는 자존심 강한 분이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천대받는 할머니가 기도 막히고
안타까워 가끔 찾아뵙는다
나도 코앞인데 하며...

자식에게 재산 미리 물려준 거 할머니 잘못 아니라고 시대가 세상이 그렇게
만든 거라고 위로도 해드리며 약간의 용돈과
노인정에 가서 시간 보내고 오시라고
돼지 저금통에서 나온 동전을 안겨드리고 인사드리고 나왔다
늙으니까 눈물도 안 나와하며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또 뵈러 올게요~
안녕히 계세요.

** 요즘 사회에 이런 노인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어떤 위로를 드려야 할까요.


2020년 8월 7일 금요일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연락을 따님에게 받았습니다(101세)
이승에서 착하게 살았던 보상으로
천국에 이르셨기를ᆢ
할머니 명복을 빕니다. 흑흑;;
수년이 지났는데도 나는 할머니가 너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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