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나의 이야기

제비가 보고 싶다

앤 셜 리 2024. 3. 2. 10:31

네이버 이미지 제비들.

우리 집 봄은 노란 개나리
울타리에서 시작되었다
죽은 듯했던 나뭇가지에 노란
물이 돈다 싶으면
금세 샛노란 울타리로 변했다

나 어렸을 적 우리 집은 삿갓만 한 초가집이 아니고 안채 뒷채,
그리고 3백 평 텃밭을 거느린 집이었다.
삼월삼진은 강남 갔던 제비들이
봄을 물고 오는 날.
텃새인 참새들 노는 마당에 어느날부터
수만 리 장천 작은 날개 하나로 날아온 밀쑥한 제비들이 나타나 지붕  위를 빙빙 돌다가곤 했다. 새끼를 부화시킬 적합한 장소가 어딘지? 작년에 자기들이 낳고 자란 집을 찾는지 제비 속 마음은 모르지만 몇 날며칠 하늘을 비행.

드디어 번지수를 찾았는지
바닥 지저분한 흔적에 눈치 챈 아버지는 마루밑에 있던 베니다판을 꺼내 톱으로 자르고
다듬어 둥지 밑에 대주셨다.
일 년 만에 만난 환영 인사고
집 지을 건축 자재
흙이나 볏짚등을 받아내는
쓰레받기인 셈이다.

제비가 다시 돌아오는 데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고 한다.
첫째, 주변에 진흙과 나뭇가지, 볏짚등 집을 지을 수 있는 재료가 있어야 한다.
둘째, 주변에 산과 나무가 있어 먹이가 풍부해야 한다.
그래야 새끼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새끼를 잘 가르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때 우리 동네는
이 세 가지 조건이 차고 넘쳤다.

앞에는 관양산, 아래는 맑고 깨끗한 개울물이 일 년 내 마르지 않고
싸움걸만 한 여초기도 없던 시절 클로버, 냉이, 민들레, 삐삐풀 질경이 등, 온갖 잡초들이 여봐란듯이 갖가지 꽃을 피우고 지고 하던 천변
올챙이 개구리는 물론 숨어서 사는 이름 모를 수많은 생명들, 풀 벌레들이 살아가는 생태 천국이었다.
개천 뚝에는 미루나무들이 서로 키재기 하며 정렬로 서 있었고.
5,6월 나뭇가지에 물이 오를 때면 미루나무 가지 꺾어다 조물조물 하얀 속살 빼내 삐리삐리리 나무 피리를 만들어 불어 주셨던 아버지가 생각나게도 하는
우리  동네..
장마가 지거나 폭우가 내린 후에는 황토물은 거칠게 뒤채며 넘실넘실 무한천으로 흘러가기도 했던 곳.
충남 예산군 예산읍 신흥동.


초가지붕 밑에 터를 잡은 제비부부는
부지런히 집을 짓기 시작했다.
두 마리가 몸짓 교환 하며 지푸라기나 진흙등을 입에 물고 와서
고개를 갸웃갸웃 살펴가며
집을 짓는다
제비 특성 호르몬의 명령일까 조그만 몸체 속에 무엇이 장착되어 저리도 조밀하게 일을 할까  김탄이 나온다.

어느 새, 마루 천정 석가래 사이 흙벽에
제비집 한 채가 완성 되었다.
출입구는 먹이를 날아다 먹일 정도 타이트한 간격에  부채살처럼 펼쳐진 구조로..
애초에 우리 가족이 보디가드긴 하지만 혹시나  다른 미물들에 덜 노출되도록 설계된 게 아닌가 싶었다.
빈센트 반 고흐도 굴뚝새, 노랑 꾀꼬리 같은 새들은 예술가 무리에 포함시켜도 손색이 없을 만큼 새둥주리를 멋지게 짓는다고 했었다.정물화 모델로도 썩 괜찮다고.


뜰에 나뭇가지에 새파란 싹들이 숱이
풍성해질 때쯤
흙집에서는 지지배배 지지배배
생명이 태어났음을 알린다.
갓 깬 병아리들 앞세우고 고개를 오여 빼고 꼬꼬~꼬끼요~로 동네방네 탄생을 알리던 닭과는 다른 알림이었다.

우리들은 까치발 띄고 새끼 구경을 하려고 해도 어림없이 높았다.
새끼들 먹이에 더 바빠진 어미들은
교대로 하늘구만리 날아다니며 산과 들에서
잡은 벌레를 입안 가득 물고 날아와
빨랫줄에 잠시 앉아 쉬었다가
파드득 날아올라 새끼들 주둥이에
넣어주곤 했다. 평소엔 쥐 죽은 듯하던 새끼들은 어미 기척에 빨간 주둥이만 집 밖으로 내놓고 힘껏 입을 벌려 끼니를 채우고 집으로 쏙 들어가 잠잠했다.
제비들은 까만 날개를 활짝 펴고 빨랫줄 몇 배 높이로 날아올라 다시 먹이를 물어 오곤 했다.


들판에 먹잇감도 지천이고 벌레들도 살이 통통하게 올랐을 즈음
어미가 새끼 집 앞에서 파닥파닥
수없이 날갯짓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새끼들이 이소 하기 전 "너도 날개가 있어 이렇게 펴서 날갯짓을 해봐" 시범을 보이며 날개에 힘이 붙을 때까지 연습을 시키는 거란다  
제비가 할 수 있는 교육인 셈이다.

그리고는 작별 인사도 없이 언제 날아들 갔나
빈둥지를 보고야 알게된다.


조류인 제비, 즉 미물인 짐승도 거주와 생계와 교육 삼박자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아는데, 사람이야 어떻겠는가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안 낳는 이유가 아닐까.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자부심을 갖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얘기가 또 엉뚱한 데로 흘러갔었다
봄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났던 제비가
나는 보고 싶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우리를 믿고 살다 간  제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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