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돈
서론
플라톤의 대화록 중 어느 것이 가장 재미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플라톤의 <대화편> 4개를 살펴보았다. 그중 눈에 띄는 글귀가 들어왔다. “사형판결을 받은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는 현장에서 제자들과 나누었던 영혼과 육체와 내세에 관한 심오한 사상의 단편을 전해준다” 죽음 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의 상황을 알 수 있겠다는 설레 임이 <파이돈>을 선택하게 된 이유이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재학시절이었다. 나는 절친한 친구의 죽음을 바로 곁에서 지켜 봤어야하는 불행한일을 겪었다. 나는 이때부터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한 달여간 혼란을 겪었던 것도 물론이었다. 하루 전만 해도 함께 웃고, 놀던 친구가 이제는 더 이상 내 곁에 없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이 친구는 좋은 곳으로 갔을 테야!” 라고 위로를 건네는 주위 사람들에게 과연 어디로 갔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겨우 17살이라는 어린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친구 생각으로, 나는 여태껏 나와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인간 본연의 물음에 대해서 새로운 인식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시점에서 파이돈은 나에게 죽음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의 존재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갖게 하지는 못했지만 나를 설레 이게 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명쾌한 답변은 나를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만드는 좋은 산파술 역할을 해주었다. 그럼 이러한 구절들을 파이돈의 본문을 통해서 얘기하려 하겠다.
본문
“‘쾌락이란 감정은 정말 야릇한 것이야. 고통이란 으레 쾌락의 반대로 생각되지만, 그 관계란 정말 애매하단 말야. 이두감정이 동시에 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법은 없지만, 그 중의 하나를 추구하여 얻으면 반드시 다른 하나도 따르게 말이지. 마치 두 개의 몸체에 머리는 하나 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야.” -파이돈 P16-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사슬에 묶여 있다가 풀려난 뒤 다리를 주무르면서 한말이다. 지금 나의 상황을 여기다가 비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3주간 의 시험기간에서 오늘 시험을 마치면서 그동안의 긴장감의 연속에서 평온함을 찾은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평온함은 3주간의 시험기간 동안의 간장감이 있었기에 나에게 더욱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앞으로 소개할 부분은 내가 파인돈을 읽으면서 가장 명쾌해 했고, 만약 다른 사람이 나에게 죽음의 정의에 대해서 말하라고 한다면 서슴없이 이 부분의 인용문을 들려주겠다.
“ ‘죽음은 삶의 반대라는 것을 안정하는가?’ ‘인정합니다!’ ‘그것들은 서로 다른 한편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겠나?’ ‘그렇습니다!’ ‘살아 있는 것에서 나오는 것은 무엇인가?’ ‘죽은 것입니다’ ‘그러면 죽음에서 나오는것은 무엇인가?’ ‘삶이라고 대답해야겠지요’ ‘오,케베스 그렇다면 인간이건 사물이건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은 것에서 나온단 말인가?’ ‘분명 그렇습니다’ ‘죽음에 대립되는 반대의 생성은 무엇일까?’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파이돈 P40~41-
이상의 대화내용은 소크라테스가 케베스에게 잠자는 것과 깨어있 는 것의 상관관계를 설명한 뒤 똑같은 방식으로 소크라테스와 케베스가 묻고 답하면서 죽음이라는 결론에 달하게 된다는 내용부분이다. 나는 파이돈에서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게 느껴졌다. 내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나에게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명쾌한 답을 가르쳐 준 것이 처음이었고, 죽음이라는 결론을 지음으로서 스크라테스는 죽음을 맞이하지만 슬프지 않고 그는 오히려 더 즐거워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의 죽음의 결론을 살펴보면, 죽은 자가 산자로부터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산자가 죽은 자로부터 생긴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거기서 되살아 나오는 그 어떤 곳에서 존재하고 있음에 대한 충분한 증명이 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한 순수한 지식을 가지려면, 육체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경험에 의해서도 입증되고 있는 일이다. 영혼 자체만이 사물 자체를 볼 수 있는 것이고, 그리고 이때에만 우리는 우리가 갈구하며, 우리의 애인이라고 부르는 지혜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이 아니라 죽은 다음에야 도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육체와 함께 있는 동안에는 영혼은 순수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면 다음 두 경우 중의 하나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곧 지식은 전혀 획득되지 않거나 또는 획득된다 하더라도 죽은 다음의 일인 것이다.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영혼은 육체를 떠나 홀로 있게 되기 때문이다.
현세에 있어서는 가능한 한 육체와 관계를 갖거나 사귀지 않고 또 육체의 본성에 전염되지 않고 신이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시가까지 우리 자신을 깨끗이 지킬 때 우리는 지식에 가장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육체의 어리석음으로부터 풀려날 때, 우리는 순수하게 될 것이며 순수한 것과 사귈 것이며 스스로 도처에서 밝은 빛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빛은 바로 진리의 빛이다. 라고 말한다. 순수하지 못한 것은 순수한 것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영혼을 순수한 본질로 보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진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각의 사용을 삼가며 영혼을 집중시키고 가다듬도록 설득함으로써, 영혼 자신과 순수한 존재에 대한 영혼 자신의 순수한 파악을 신뢰하고 다른 동료를 통해서 영혼에 이르고 변화하기 마련인 것은 무엇이든 믿지 말도록 권함으로써 철학은 영혼을 해방시키려고 노력하게 되고, 이러한 것들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이지만 영혼이 스스로의 본성을 통해 보는 것은 예지적인 것이며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그리고 참된 철학자의 영혼은 이러한 해방에 거슬려서는 안 되며 따라서 가능한 한, 쾌락과 욕망과 고통과 두려움을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인간이 큰 기쁨이나 슬픔이나 두려움이나 욕망을 가질 때, 이러한 것들로부터 해를 입는데, 그것은 예상할 수 있는 해악-----예컨대 육욕 때문에 희생된 건강이나 재산의 상실 따위-----일 뿐 아니라, 훨씬 더 큰 해악, 가장 크고 가장 나쁜 해악이며 전혀 생각지도 못하던 해악이라고 얘기한다. 칸트는 죽음을 육체와 영혼과의 분리라고 생각하면서, 영원하고 순수한 영혼에 대해서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결론
죽음이란 영혼과 육체의 분리 일뿐이라는 전제로부터 시작하여 ,이식의 상기설 을 거쳐 영혼은 불멸이며, 죽음은 모든 불순함에서 벗어난 영혼이 순수한 본질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것임을 많은 예를 들어 명쾌하게 입증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진정으로 해방되어 순수한 세계로 가게 되는 자신의 죽음을 함께 기뻐해 줄 것을 당부하며 독배를 마시는 장면은 가슴 뭉클한 가동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는 것이었다.
나에게 누군가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파이돈 을 읽기전의 나의 대답은 “죽음이 가장 두렵다” 였을 것이다. 하지만 파이돈을 일고난 지금의 나 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죽음이라고는 말하지 않을 것 이다. 그리고 철학의 근원의 한 부분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았고, 대강의 감을 잡음으로서 철학도로서의 첫발을 내딛는 다는 느낌도 받았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에 임박한 그 순간 내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특별히 경건한 생활을 한 사람들은, 감옥과 같은 이 세상의 여러 지역에서 놓여나 자유로운 몸이 되어 저 위 깨끗한 곳으로 올라가 살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들 중에는 특히 철학으로 자기자신을 순화 시킨 사람들은 미래를 전혀 육체 없이 살게 될 것이며 다른 사람들의 거처보다 훨씬 좋은 곳에 이르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훗날 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때에도 나는 걸어온 길을 다시 한 번 회상하며 스크라테스가 즐겁게 죽음을 맞이했던 것처럼 나 역시 그러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작은 청사진도 그려 본다.
[출처 : eea - 엘리트 글쓰기 논술 교실 http://cafe.daum.net/eea]
* 윗글은 전부 다음 카페 (eea - 엘리트 글쓰기 논술 교실, http://cafe.daum.net/eea)에서 협찬 받은 글 입니다.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파이돈 (0) | 2010.05.29 |
---|---|
[스크랩] 오늘날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0) | 2010.05.29 |
외부 기고문 (0) | 2009.11.04 |
대상포진.... (0) | 2009.10.08 |
이석증....(耳石症) (0) | 2009.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