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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者 哲學

앤 셜 리 2010. 6. 1. 23:23

• 富者 哲學

12대 300년 동안이나 ‘만석꾼’을 이어간 경주 최부잣집 이야기는 여러 번 들어도 가슴에 울림이 남는다.

 부자가 지녀야 할 철학을 제시한 집안이기 때문이다. 최부잣집의 ‘부자 철학’은 이렇다.

 

첫째, 만석(萬石)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한다

 

. 둘째,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한다.

 

 셋째, 흉년에 논[畓]을 사지 않는다.

 

 넷째, 과객(過客) 대접을 후하게 한다.

 

 다섯째, 파장(罷場)에 물건을 사지 않는다.

 

 여섯째, 벼슬은 진사(進士) 이상 하지 않는다.

 

 일곱째, 시집온 며느리는 3년 동안 무명 옷만 입어야 한다.

 

 만석 이상의 재산은 환원한다는 원칙은 인간으로 하여금 끝없는 욕망의 포로가 되는 것을 막게 하는 철학이다

. 멈출 줄을 아는 ‘지지(知止)’의 지혜를 실천한 셈이다.

 최부잣집의 환원 방식은 소작료를 낮추는 방법이었다.

 다른 부자들은 대개 7할 정도의 소작료를 받는 것이 조선 후기의 관례였다.

 그러나 최씨들은 4할 정도만 받았다고 한다. 일제 시대 전국에서 발생한 ‘소작 분쟁’의 원인이 7할이나 되는

 과도한 소작료를 내려 달라는 것이었음에 비추어 보면 최씨들의 4할 소작료는 시대를 앞선 결단이었다.

 흉년에 논을 사지 않는다는 철학도 대단하다.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상황에 직면하면 서민들은 가지고 있던 몇 마지기 논이라도 헐값에 팔아서 목구멍에 풀칠을 해야 한다.

 흉년에는 ‘흰죽 논’이 유행하였는데, 흰죽 한 솥단지와 논 한 마지기를 맞바꿔서 생긴 논이 바로 ‘흰죽 논’이었다.

 다른 부자들은 흰죽 논을 대거 매입하였지만, 최부잣집은 흰죽 논을 절대 매입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자신의 재테크 기회로 삼는 것은 부자 양반이 할 도리가 아니라고 여겼던 것이다.

 흉년에 흰죽 논을 사들여서 재산을 증식한 다른 부자들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운동이 일어났을 때 집이 불타고 사람이 죽었다.

 난리(亂離)가 났을 때 평소에 쌓여 있던 개인 감정을 정리하는 법이다.

 현재 론스타가 문제가 되는 이유도 IMF라는 대흉년이 들었을 때 외환은행이라는 흰죽 논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인간사(人間事)는 논리(論理)보다도 정리(情理)가 더 작용할 수도 있다.

 최부잣집의 부자 철학은 세계에 내놓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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