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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이 보낸 추모의 글

앤 셜 리 2010. 6. 3. 16:52

한기택 부장님, 한 판사님, 한 형."

 지난해 7월 26일에 세상을 떠난 동료 한기택 판사를 그리워하며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이 보낸 추모 글의 첫 머리이다. 故 한기택 판사와 같은 동료였던 그를 목 놓아 부르는 강금실 후보의 추모 글의 서두에는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역력하다.

 평소 판사는 “목숨 걸고 재판해야 한다”고 말하며 오로지 재판에만 열중함으로써 동료 판사들의 귀감이 되었던 한기택 판사. 그가 내린 판결들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받는 차별과 그들의 권익 보호에 대한 남다른 관심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2004년 4월 재벌가의 딸이 결혼축의금 2억 천만원에 대해 부과된 증여세를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증여세 부과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 단적인 예이다.

 후배 판사인 강금실 전 장관은 벼락같이 닥친 한기택 판사의 죽음 앞에 “살아 있는 것이 부끄럽네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가요”라며 안타까워한다.


‘목숨 걸고 재판’하다 떠난 한기택 판사 [동아일보 2005. 8.8]

<http://www.donga.com/fbin/output?sfrm=3&n=200508080150>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이 보낸 추모의 글▼


한기택 부장판사의 장례식에서 흐느끼는 강금실 전 장관.



한기택 부장님, 한 판사님, 한 형.

당신은 죽어서 그리움으로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살아서 우리에게 존재를 비추어 주는 빛의 역할을 하였고, 죽어서 그리움으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영원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가고 저는 살아서 이렇게 부끄럽습니다. 살아서 이렇게 부끄럽다는 생각을 처음 해봅니다. 언제 보아도 호리호리하게 야윈 몸을 조금 흔드는 듯, 살짝 보조개가 들어가는 듯, 변함없는 미소 속에서 언제나 다름없던 차근차근하고 조용한 말씨로, 당신은 항상 거기에 그 자리에 있었어요.

우리가 가고 싶지만 차마 엄두가 안 나 못 가는 곳. 살아 있는 모든 시간, 살아 있는 모든 정열을 몰입하여 지극한 순결로 머물러 있는 곳. 거기에서 언제나 당신은 조용조용하게 우리에게 말하였고 몸소 보여 주었어요. 가장 치열한 정점에서 사는 것만이 진실이며 정답이라고요. 우리는 조금씩 비켜서 있었지요. 그러면서 당신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으로 스스로 위로했지요. 이제 당신은 영원한, 영원히 닿기 어려운 빛으로 우리 삶을 쓰다듬어 줄 것인가요.

한 판사님, 한 형, 기택 씨.

살아 있는 것이 부끄럽네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요.

고뇌하고 방황하는 우리 모두에게 당신은 이제 영원한 그리움이 되었어요. 지금쯤 하느님 앞에서 새로운 영혼의 삶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당신이 함께하였던 당신의 가족, 친구들, 우리 모두에게 남은 삶의 길을 이끌어 줄 준비를 하고 계신가요.

당신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올해 2월 고등법원 부장승진 축하모임 자리였어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소곤소곤 저에게 말하였어요. “영세 받은 것 축하한다”고. “이승은 아무래도 행복한 곳은 아니다”고. 그것이 제가 마지막으로 들은 당신 말이었어요. 이승은 아무래도 행복한 곳은 아니에요. 그러나 그리움이 된 당신을 따라 우리도 최선의 길을 찾아 노력할게요. 다시 만날 날까지. 그날까지 새로운 그곳에서 행복한 나날 꾸리고 있으세요. 다시 만날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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