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신문스크랩

<장영희컬럼>마음의 항아리>

앤 셜 리 2010. 6. 6. 08:13

미국의 유명한 경영대학원에서 한 교수가 시간 쓰는 법에 대해 특강을 했다. 그는 항아리 하나를 탁자에 올려놓고 주먹만한 돌들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항아리 위까지 돌이 차자 그가 물었다.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 “네” 학생들이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항아리를 흔들어가며 자갈을 채웠다. “이제 가득 찼습니까?” 학생들은 다시 “네” 하고 대답했다. 이번엔 모래를 가득 붓고 물었다. “이제는 가득 찼지요?” “네” 학생들이 답했다.

그러자 그는 물을 항아리에 가득 부었다. “지금 내가 여러분에게 보여준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학생 중 하나가 손을 들고 말했다. “아무리 스케줄이 꽉 찼다 해도, 언제든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닙니다.” 교수는 대답했다. “자갈이나 모래를 먼저 집어넣으면 큰 돌은 결코 집어넣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삶 속의 큰 돌, 즉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우선적으로 여러분의 마음의 항아리에 집어넣으십시오.”

재미있는 일화다. 우리 마음속에 항아리 하나를 두고 각자의 생각과 의지를 넣고 다닌다면 그 항아리를 제일 크게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성공에 대한 의지, 행복, 돈, 또는 사랑….

지난해 조금 심각한 병에 걸려 몇 달 동안 병원 생활을 한 적이 있다. 폐렴에 감염되어 올해 초 재입원, 사경(死境)을 헤매기도 했다. 고열과 통증을 견디며 문득 만약 이게 마지막이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새삼 세상은 찬란하게 변했다. 병원 창문으로 보이는 조각하늘이 눈부시고 지인이 갖다준 화분에 핀 풀꽃 하나가 너무 애틋하고, 내가 글에서, 또는 교실에서 말로만 떠들던 생각들, 즉 삶 자체가 축복이고 사랑이 최고이고 하루하루의 일상이 소중하다는 ‘이론’이 갑자기 ‘실제’가 되어 이제껏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회한이 가슴을 쳤다.

이렇게 허무하게 떠날 수는 없지, 이 좋은 세상에서 더 살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이제는 진짜 한번 잘 살아 봐야지. 죽도록 앞만 보고 뛰느라고 한 번 쉬어 본 적도 없는데, 이제는 쉬엄쉬엄 주변도 돌아보고 내가 가르친 이론대로 잘 살아 봐야지, 그런 생각을 내 마음 항아리에 제일 큰 돌멩이로 집어넣었다.

나는 다시 병원 밖의 생활로 복귀해 있다. 여전히 1주일에 한 번 항암치료를 받으러 병원을 들락거리고 백혈구 수치에 울고 웃지만 통증이 없으니 1년도 안 지난 병원 생활이 아득한 꿈처럼 느껴진다. 더욱 신기한 것은 내 마음 항아리이다. 그때 그 절박한 심정의 큰 돌멩이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문득 들여다본 내 마음 항아리 속에는 다시 모래와 자갈만 그득하다. 정신없이 한 학기를 보내며 나는 다시 ‘이론가’가 되어 책으로만 사랑을 떠들며 스케줄을 쪼개고 쪼개서 어떻게 하면 자투리 시간을 내어서 좀 더 일을 많이 할까, 어떻게 하면 좀더 성취하고 좀더 인정을 받을까만 고심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췌장암에 걸려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애플 컴퓨터 설립자 스티브 잡스는 “죽음은 삶을 리모델한다”고 말한다. 낡은 아파트만 리모델하는 게 아니라 삶도 리모델할 수 있고, 병은 우리가 삶의 의미를 깨닫고 새롭게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빨리 배우지 못하는 나는 이제 천천히 내 삶을 리모델할 준비를 한다. 한 해를 보내며 내 마음 항아리 속의 모래와 자갈을 쏟아버리며 문득 궁금하다. 독자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 항아리에는 지금 무엇이 들어있나요?

'신문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용헌 살롱] 土宗大學   (0) 2010.06.06
스티븐 호킹 박사  (0) 2010.06.06
법조계의 양심, 한기택 판사  (0) 2010.06.06
이규태 마지막 컬럼<6702회>  (0) 2010.06.04
천재의 바람기   (0) 2010.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