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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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 박사

앤 셜 리 2010. 6. 6. 08:14

얼마 전 블랙홀 연구로 유명한 세계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두 번째 부인 일레인과 파경을 맞았다는 뉴스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일반인들은 휠체어에 의지한 위대한 천재 과학자와 어울리지 않는 소식에 당혹스러워했다. 그러나 이웃으로서 호킹 박사를 지켜본 경험에 의하면 이혼을 했든 안 했든 그의 인간적인 위대함은 변하지 않는다. 바로 불치의 병을 앓고 있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위대함이다.

호킹 박사는 이미 21세 때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지만 온갖 고통을 견뎌내며 64세에 이른 지금까지 투병을 하고 있다. 그가 앓고 있는 루게릭병(病)은 몸의 근육은 전혀 움직일 수 없으면서도 감각은 정상인과 같은 끔찍한 병이다. 모기가 날아와 피를 빨아먹어도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다. 폐렴을 앓고 난 후에는 목에다 작은 구멍을 뚫어 목소리마저 잃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구멍으로 호스를 집어넣고 기관지를 청소해야 한다. 그 광경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소름이 돋으면서 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호킹 박사가 외부와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컴퓨터를 통해서다.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손가락 몇 개로 힘들게 자판의 버튼을 눌러 한 단어 한 단어 만들면 컴퓨터가 인공 목소리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지금은 손가락 근육마저 마비되어 눈동자로 컴퓨터 화면의 커서를 움직이는 안구(眼球) 마우스에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육신은 그의 마음까지 마비시키지 못했다. 유학 와서 첫 생일에 호킹 박사 부부를 초대했는데 우리 집에 계단이 많아 올 수가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김밥 한 접시를 전해줬는데 간호사 말로는 호킹 박사가 맛있게 잘 먹었다고 한다. 사실 호킹 박사는 제대로 씹지 못하기 때문에 음식을 잘게 썰어 옆에서 떠먹여줘야 한다. 평소 먹지 않던 음식이라면 오죽 힘들겠는가. 그런데도 멀리 한국에서 온 유학생의 성의를 생각해 맛있게 먹어준 것이다.

그의 따뜻한 마음을 알 수 있는 일은 또 있었다. 2005년 봄 호킹 박사 부부를 ‘한국의 밤’ 행사에 초빙한 일이 있다. 행사가 끝나고 참가자들과 자유시간을 갖도록 했는데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너무 오래 군중 속에 두는 것 같아 걱정을 했더니 당시 부인은 사람 만나길 좋아하는 남편에게 이런 기회가 흔치 않다고 그냥 두란다. 아마도 그는 가까이 다가온 아이의 볼에 키스를 해주고 사람들의 이런저런 질문에 답변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진 찍는 사람들을 위해 다정한 포즈도 취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심정이야 오죽했겠는가마는 아무런 불평 없이 사람들이 떠날 때까지 밀랍인형처럼 앉아 있었다.

사실 그는 무척이나 외로운 사람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는 첫 번째 부인 제인은 25년간 호킹 박사를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하지만 호킹 박사의 병이 악화되자 견디기 힘든 외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더욱 가슴 아픈 사실은 호킹 박사의 허락을 받고 딸의 피아노 교사와 교제를 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부인 일레인은 호킹 박사를 상습적으로 구타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가 상습적인 구타를 부인(否認)하면서까지 아내를 곁에 두고 싶어했던 것은 지독한 외로움 때문 아니었을까.

우리가 호킹 박사를 존경한다고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불치의 병에 걸린 걸 알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이루어낸 학문적 성과 때문일 것이다. 정상인으로 살아갈 수 없는 그가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장애를 이겨내고 후학 양성을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강연을 할 때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오늘을 함께 사는 우리 곁에 그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