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자고 있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나 같은 저녁형 인간에게 아침부터 다급히 전화를 건 용건은 이것이었다. “너. 불륜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니?” 아! 이건 댓바람부터 웬 봉창 두들기는 소린가 싶었다. 근데 잡지사 기자인 그 친구 말이 ‘불륜’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고 있으니 한 말씀 하란 거였다. 김수현의 ‘내 남자의 여자’도 끝났고, 말 많던 ‘나쁜 여자, 착한 여자’도 조용히 방송되고 있는데 불륜에 대해 굳이 덧붙일 말이 더 있을까 싶었다. ‘젖소부인 바람났네’도 아니고, ‘대한민국 바람났네’란 기사가 나올 판이지 않는가.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내 남자의 여자’에도 나는 별 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늘 간통(위기의 남자)과 불륜(질투는 나의 힘, 바보 같은 사랑, 거짓말 기타 등등)의 현장에 있던 배종옥이 느닷없이 부엌에 들어가 ‘굵은 소금을 곁들인 100퍼센트 완벽한 감자’를 쪄내는 주부 역할로 돌변했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차라리 김희애의 머리가 파마머리가 아니었으면 덜 지루했을 수도 있다. 언젠가부터 드라마에서 애용하던, ‘나쁜여자=뽀글이 머리’ 란 공식이, ‘착한여자=긴 생머리’란 공식이 식상해서 말이다.
사실 드라마에만 한정하자면 ‘불륜’은 ‘삼각관계’나 ‘재벌2세가 등장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만큼 식상한 레퍼토리다. ‘불륜’이란 소재가 나왔다 싶으면 신문이고, 잡지고, “또 너냐?” 라고 눈 흘기며 까대기 바쁘지 않은가. 얼마 전 드라마를 공부하는 한 친구는 과제로 불륜 소재의 대본을 썼다가 현업 작가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넌 썩은 생선을 참 곱게도 회쳐놨구나!” 소재로 이용한 ‘불륜’이 이미 썩은 생선이란 소리다.
드라마 작가에게조차 식상할 정도의 ‘불륜’이 새로운 시도로 받아들여지려면 근친상간적인 ‘파격’이 아니라 문학적 ‘수혈’이 필요하다는 판단도 들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나 ‘늦어도 11월에는’ 같은 불륜을 바라보는 인간 존재에 대한 소설들 말이다. 머리채 휘어잡고, 욕바가지 퍼붓는 ‘불륜’의 표피만 쫓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
얼마 전에 신문을 보다가 황당한 기사를 읽었다. 심부름센터를 통해 본 대한민국 불륜의 현장을 고발한 기사였는데, 인터뷰 했던 한 심부름센터 직원이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 심부름센터의 전망은 아주 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게 뭔가 싶었다. ‘독고영재의 스캔들’ 에나 나올법한 불륜 남녀들이 넘치다 보니, 경쟁 업체가 늘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란다. 갑자기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잘 하면 ‘VJ 특공대’ 같은 프로그램의 ‘이색창업열풍’에 심부름센터가 등극할지도 모를 일 아닌가.
나는 불륜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불륜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파괴적인 사랑 말이다. 그것은 나 하나 끝장나는 정도의 교통사고가 아니라, 공동체가 붕괴되는 대형 참사에 가까운 것이다. 불행히도 나는 소설이나 영화 혹은 철학서가 아닌 그 어떤 곳에서도, 진심으로 배우자의 불륜을 용서했다는 남자, 혹은 여자를 만난 적이 없다. 그런 종류의 상처는 너무나 치명적이어서, 영혼에조차 깊은 칼자국을 남긴다. 아무리 그럴 듯한 이유를 갖다 붙여도, 세상에 좋은 살인이 없는 것처럼, 행복한 불륜도 없다.
우습게도 배우 문성근이 한 영화에서 말했던 대사가 떠올랐다. “나는 간통은 해도, 강간은 안 해!” 뻔뻔하고, 황당한가? 나도 이 얘길 듣고 한참을 웃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런 대사를 실생활에서 남발하다간 근엄한 신구 선생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른단 사실이다. “4주 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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