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공대 박사가 말했다. "문과대생들이 몇 년 반짝 공부해 고시(高試) 붙어 떵떵거리고 살 때, 우리는 평생 컵라면 먹으며 밤새 실험한다. 연구중심의 자연대생들은 우리를 보고 '돈 잘 버는 공대생'이라고 비아냥거리지만, 사회나 기업에 기여하는 것에 비하면 보상이 너무 작다."
사법연수원생도 말했다. "옛날에는 돈 보고 결혼하는 선배들 욕했었는데 요샌 생각이 좀 바뀌었다. 지난 십년간 고생했던 게 억울하게까지 느껴진다. 고시 붙었다고 어디서 돈이 뚝 떨어지나. 남들 취직해 돈 번 거 생각하면, 그 끔찍했던 10년 보상받는 건 합리적인 것 같다."
세상엔 억울한 사람도 참 많다. 외과의사는 성형외과 의사에 비해 돈을 못 번다고 투덜거리고, 판사는 변호사에 비해 규제는 많고 월급은 적다는 '상대적 박탈감'을 말하고, 교수는 '공부도 못한 것들'이 외제차 타는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하소연한다. 사회적 약자의 억울함은 개인의 서러움에 머물 뿐이지만, 소위 '사회적 포지션'이 높은 이들의 '억울함'은 기형적 사회 문화를 낳는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10년 전, 어느 지방의 향우회에 우연히 동석했었다. 각지에서 모인 참석자 구성은 특이했다. 농부, 서울의 대학교수, 전직 조직원 출신의 주류도매업자, 기업인, 지방세무서 직원, 지방검찰청 검사, 무직…. '검사와 피고'나 '세무공무원과 납세자'로 만났을 수도 있는 사람들은 '호형호제(呼兄呼弟)'로 무장해제되고 하나가 됐다. 값비싼 향토 음식을 구해온 것은 주류업자였다. 그는 연방 교수·검사·세무공무원에게 "내가 좀 모실 테니 형들 시간 좀 내봐"라고 했다. 잘난 그들이 '고향 동생'을 위해 고시합격하고 박사 된 게 아닐진대, 그들은 당연한 듯 과도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외지인이자 성(性)이 다른 기자의 눈에는 '저런 게 바로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지연(地緣)'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고향의 이름'으로 뭉치는 이런 문화는 소위 말하는 접대(接待) 문화에서는 그래도 윗길에 속할 것이다.
부산 건설업자 정모씨가 기록했다는 검사 접대내역서를 보면서 느낀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최고의 엘리트를 수중에 넣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는 점이었다. 접대 내역을 보면 대개 밥값과 술값, 택시비다. 한정식이나 일식집 1차, 여성접대부가 나오는 룸살롱 2차, 그리고 일부 3차를 나간 사람들도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네 명 접대에 대략 300만~400만원을 썼다고 쓰여 있다. 서민들에겐 눈이 휘둥그레질 액수지만, '빽'만 없지 돈과 비리는 많은 업자에겐 많지도 않은 '괜찮은' 액수일 것이다. 하룻밤 일인당 얼마로 유력자들과 '형, 동생' 할 수 있다는데…. 열심히 일하는 대다수 검사들의 억장이 무너질 일이겠지만 이게 현실이다.
'접대 비즈니스'의 세 주인공, '주는 놈, 받은 놈, 고자질하는 놈' 중 가장 피해가 큰 건, '받은 놈'일 수도 있다. 공직이나 사회적 명성은 '뇌물수수' '스폰서'라는 단어와 결합하는 순간, 완전히 '쪽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웃기지 않는가. 고작 해야 숙취나 뱃살을 남길 술과 밥으로 오래 공들여온 인생이 망가진다는 것이.
로비의 시작은 "식사나 한번"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 밥은 드물다. "나만 먹은 건 아니다"는 의미 없다. 핵심은 '먹었나, 안 먹었나'다. 주는 대로 먹고 다니다간, 음험한 자들의 '소액매수(少額買收) 가능자' 리스트에 반드시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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