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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칼럼] '금강산'을 보며 '개성'을 걱정한다

앤 셜 리 2010. 9. 6. 19:59

천안함 침몰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동안 북한의 김정일 집단을 도와줘서 과연 무엇을 얻었는가를 깊이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여년간 우리는 각종 물자지원, 식량지원, 정상회담 대가,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을 통해 수십조원에 이르는 대북지원을 해왔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에 대북 퍼주기는 그 절정에 달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되돌아온 것은 천안함의 침몰이고, 민간인들의 주검이며, 이루 참아내기 어려운 모욕과 파괴공작뿐이었다.

더이상 이대로 갈 수는 없다. 김정일 세력이 변화할 조짐을 보이지 않는 이상, 우리는 더 이상 저들에게 인질 잡혀 질질 끌려다닐 수 없다. 우리가 무엇인가 보여주지 못하면 우리는 계속 '돈 주고 뺨맞는' 상황에 빠질 것이며, 기아와 질곡에서 헤매는 북한 주민에 대한 저들의 독재와 탄압은 더욱 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대북 패배주의가 기승하고 있다. '대북지원은 평화의 대가'라든가,'북한을 돈주고 달래자'는 등의 소극적 패배주의에서부터 '북한에 대한 무력보복은 곧 전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등의 적극적 패배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그래서 '천안함'은 머지않아 잊혀지고 말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는 먼저 '김정일 세력과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문제부터 생각해야 한다. 공존할 수 없다면 그들과 손을 끊는 조처들을 취해야 한다. 그 첫 번째가 돈줄을 끊는 것이다. 우선 개성공단에서 철수해야 한다. 혹자는, 그것은 북한당국, 특히 군부가 원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북한당국이 온갖 위협을 하면서도 이제껏 공단을 건드리지 못한 것은 그 '수입'의 무게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앞으로 북한과의 충돌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적의 수중에 우리 국민(우리 측 직원)을 남겨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금강산 관광의 모든 것을 가차없이 몰수하는 저들의 뻔뻔함과 도발성이 언제 개성공단에서 재현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다. 더구나 우리가 앞으로 북한에 대해 어떤 제재를 가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매일매일 개성을 왕래하는 우리 국민들을 인질상태로 놓아두면서 일을 추진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개성공단에서 철수할 경우, 우리측이 입을 손실액, 투자 미회수액 등이 크겠지만 대부분 기업들이 남북경협보험에 가입해 실제 투자손실액의 90% 범위 안에서 70억원 한도로 보상받을 수 있는 구제제도가 있는 만큼, 만일의 경우 인명피해를 생각하는 것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그 밖에도 우리는 국제적 공조를 통해 북한 위조지폐, 위조담배, 무기수출의 통로를 차단해 북한의 돈줄을 죄어야 한다. 대북금융압박의 효율성은 이제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 사건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독재자의 돈줄을 차단하는 것이야말로 독재체제를 응징하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라는 것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북한당국이 가장 싫어했던 비무장지대의 대북 방송을 재개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자고로 인질사건 해결의 제1조는 '납치범에게 몸값(ransom)을 지불하지 말라'는 것이다. 몸값 지불은 결국 또 다른 납치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국가적 차원의 인질극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대북 퍼주기가 한창이던 시절, 취재차 만난 한 탈북자의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대북식량원조를 끊으면 북에 남겨두고 온 내 가족이 굶어죽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대북지원을 끊어야 한다. 그것은 결국 김정일 독재를 연명시키고, 따라서 북한 인민의 고통을 연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오늘의 북한 세대를 희생해서라도 다음 세대를 구해야 한다. 고통의 악순환을 어디선가에서 끊어야 한다면 지금이 그때다."

46명 용사의 전사와 군함의 침몰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른 천안함 피폭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반드시 남겨야 한다. 첫째, 우리에게서 불과 몇 백㎞ 떨어지지 않은 곳에 우리를 겨냥한 장사정포가 있고 그 뒤에는 핵무기까지 있다는 현실을 일깨워야 한다. 둘째, 바로 우리들 내부에 북쪽 테러집단에 동조하는 네트워크가 있고 저들의 지령으로 언제든 남쪽을 교란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수긍해야 한다. 셋째, 김정일 세력과는 우리가 아무리 잘 해보려 해도 결코 우리의 선의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넷째, 우리가 당하고서도 가만히 있으면 적들은 우리를 업수이 여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46용사의 희생이 너무 무의미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