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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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끌어안는 노장의 內功

앤 셜 리 2010. 9. 6. 20:00

백수(白水) 정완영(91) 시인이 새 시조시집 '구름 山房(산방)'(황금알 출판사)을 냈다.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고르면'으로 시작하는 시조 '조국(祖國)'(1962년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 교과서에 실리며 큰 사랑을 받았던 시인은 평생 고향인 경북 김천에 머물며 시조를 쓰고 있다. 이번 시조시집에 수록된 시조 120여편은 모두 초장·중장·종장의 3장을 엄격히 지킨 평시조들이다. 3행의 영토가 좁을 만도 한데 시인은 활달한 상상력과 비유로 시행의 제약을 극복한다. 시집의 맨 앞에 수록된 '감을 따내며'부터 그는 "천부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수사와 우주적 상상력"(시인 문태준의 평)을 과시한다. '저렇게 푸른 하늘이 어디에다 가마[窯] 걸고/ 이렇게 붉은 열매를 주저리로 구워 내렸나/ 아흔 해 이 땅에 살아도 가마터를 나는 몰라'

벚꽃이 지는 봄날 저녁, 한 잔 술이 그리워지게 하는 시 '춘수(春愁)'는 바로 외워 암송할 만하다. '물오른 버들개지를 꺾어 들고 내려와서/ 겨우내 배고팠던 항아리에 꽂아준다/ 둥글고 어여쁜 수심도 봄 더불어 꽂아준다.'

나이가 적지 않기 때문일까. 시인도 어쩔 수 없이 고향과 나이 먹음, 이승과 저승 등을 소재로 시를 여러 편 썼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을 담은 시인의 작품은 야단스러움도 슬픔도 없이 삶이 순환하는 이치를 조용히 끌어안는다. '징검징검 건너가면 저 세상이 거기 있고/ 징검징검 건너오면 이 세상도 거기 있고/ 그 환한 눈물의 이치가 냇물 속에 흘렀었네.'(수록시 '내 고향 징검다리')

그가 시를 쓰는 것은 아직도 못다 한 말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내가 밤을 새워가며 시를 자꾸 쓰는 뜻은/ 낙화시절 보냈는데도 못다 한 말 있기 때문/ 꽃 지고 꽃 속에 물리는 까만 씨앗 있기 때문.'(수록시 '못다 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