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가족 이야기

할머니와 고추가루

앤 셜 리 2020. 9. 18. 04:19

(언니네 이야기)

벌써 8년전이다
어느날 낯선분의 전화 한통화
"거기 ㅇㅇㅇ집이지요
네,
"ㅇㅇ어머님 이신가유"
네, 누구세요?
아이구~아드님 훌륭하게 키우느라 애쓰셨쓔
공준데유 고추가루를 좀 보내려는데
주소좀 갈켜주세유

아들애가 사법연수중에 충남 공주
지청에서 판사 실무교육 받을 때 일이다
할머니 한분이 이웃과 땅 측량 문제로
몸 싸움을 하다 폭행죄로 고소를 당한 
사건
83세 노인이 어쩌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법원에 출두 했는지 모르지만
할머니는 잔득 주눅들고 겁 먹은
표정이었단다
평생 땅만 일구며 살던 촌노가 낯선 건물로 죄인되어 끌려 왔으니 억울함 까지 뒤얽혀 이런 난감한 일은 없었으리라

할머니는 문맹이셨다
조서를 작성 할 때도 아들애가
하나하나 물어 직접
써주고 할머니에겐 지장만 찍게 했단다
사이사이 
자기 원통한 얘기도 들어줬던
청년이 어느날 까만 법복을 입고
높은 자리에 앉아 판결을 내렸다
집행유해 2년이란 판결을ᆢ

법률 용어를 잘 모르는 할머니는 무슨 뜻인지
모르고 머뭇대자 
"할머니 끝났어요 이젠 집에 가셔도 되요"
예? 그럼 징역도 벌금도 안내도 되는거유
"네, 앞으로 이웃과 다투시면 안되요
2년안에 이런일로 여기 또 오시면 그때는
벌금도 징역도 살아야 되요"
그거야 자신있다는듯 "고마워유고마워유"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집으로 가셨다

며칠후, 할머니는 지팡이를 집고
까만 비닐 봉지를 내둘며 법원에
다시 나타 났다
여기저기 ㅇㅇㅇ판사님을 부르며
(할머니에겐 이 건물에 있는 사람은 다
판사님이다)

찿아낸 청년에게 이거 내가 농사 지은건데
어머니 갖다드리란다 좋아 하실거라고.
아들은 펄적뛰며 난 교육생이고 이런거
받으면 안되는거라고ᆢ
당신 귀가 어두우니 목소리는 어찌큰지
얼마전 할머니의 일생일대의 난감한
상황과는 다르지만 아들애는 비슷한
상황에 쩔쩔 맸단다
할머니 설득은, 재판 받기전 주는건 뇌물이지만 끝났으니 괜찮다고, 나 감옥에 안가게
해줬쟈뉴 고마워서 그래유~~
자기죄를 사하여 준 사람에게 최소한의
도리라는듯 막무가내 떼를 쓰며
끝내는 어머니 전화번호라도
적어달라고ᆢ
주머니에서 구겨진 종이쪽지를 찿아 내밀며
통사정 하기에
할 수 없이 전화번호를 적어 드렸단다

퇴근후인지 전후사정 다 빼고 아들이 볼 멘
소리로
"엄마 시골에서 어떤 할머니한테 전화갈거야"
하고 전화를 뚝 끊어버린지
며칠후 저 위 낯선분이 바로 그 할머니였다 

우편택배로 배달 온 고추가루 2k
풀자마자 새빨간 가루에서 
매콤하고 달큰한 냄새가 폴폴~~
그해, 김장에 다른 고추가루 반만 넣었는데도
버무린 양념에서 예년 붉기가 나왔었다 
이후 김장때만 되면 아들을 화나게한
노인의 순박한 정서가 떠오른다.
농사중에 고추농사가 젤 힘들다는데..
지금은 90세가 넘으셨을 할머니가
건강하신지 모르겠다
건강하게 지내시길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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