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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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성길

앤 셜 리 2010. 6. 4. 10:39

귀성길 ‘내일같이 명절날인 밤은 부엌에 쩨듯하니(환하게) 불이 밝고 솥뚜껑이 놀으며 구수한 내음새 곰국이 무르끓고 방안에서는 일가집 할머니가 마을의 소문을 펴며 조개송편에 달송편에 죈두기송편에 떡을 빚는 곁에서 나는…설탕 든 콩가루소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백석은 ‘고야(古夜)’에서 정겹고 푸근하던 어릴 적 명절 전야를 다채로운 시각과 후각으로 되살렸다.

 

 아이들에게 추석은 더없이 넉넉하고 행복한 축제였다.

 

 ▶이젠 송편 빚는 집도, 추석빔 따로 사 입히는 집도 별로 없다.

고향 명절의 추억들은 흑백 사진처럼 빛 바래 간다. 커 가며 명절은 덤덤하다 못해 짐스럽기까지 하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44%가 “추석이 반갑지 않다”고 했다.

남자(40%)보다 여자(49%)가, 미혼자(29%)보다 기혼자(49%)가 더 부정적이다.

 돈(46%), 음식 장만(22%), 귀성길 체증(6%) 탓이다.

 ‘그저 귀찮아서’도 11%다.

▶‘전화기 속에서 어머니가 우신다/ 니가 보고 싶다 하시면서…어릴 적 객지에서 어머니 보고 싶어 울었다/ 그때는 어머니/ 독하게 울지 않으셨다…언제부턴가 고향도 객지로 변해/ 어머닌 객지에서 외로움에 늙으시고’(김영재·어머니).

 고향이 아무리 객지처럼 썰렁하다 해도 자식 보고픈 부모 마음은 한결같다.

‘막내딸이 추석이라고 송이를 보내왔다/ 바뻐서 못 온다고/ 아 내겐 송이 냄새보다는/ 사람의 냄새가 그리운 것을’(조병화·송이).

 

 ▶자식은 도시에서 찌들고 부모는 시골에서 시든다.

‘장자(莊子)’에 ‘샘물이 마르면 고기들이 침으로 서로를 적셔준다’고 했다.

 보름달처럼 둥근 마음으로 가족과 세상을 따뜻하게 보듬는 날,

 추석이다. ‘나이 쉰이 되어도/ 어린 시절 부끄러운 기억으로 잠 못 이루고…반백의 머리를 쓰다듬는 부드러운 달빛의 손길/ 모든 것을 용서하는 넉넉한 얼굴/ 아, 추석이구나’(유자효·추석).

 ▶이번 추석에 하룻밤 넘게 고향 방문을 계획한 이가 44%,

10여 년래 최고치란다.

 긴 연휴 덕분이다.

 ‘고향길이야 순하디 순하게 굽어서/ 누가 그냥 끌러둔 말없는 광목띠와도 같지요/ 산천초목을 마구 뚫고 난 사차선 저쪽으로/ 요샛사람 지방도로 느린 버스로 가며 철들고/ 고속도로 달리며 저마다 급한 사람 되지요’(고은·귀성).

 서해대교 참사가 가슴 아프다. 귀성길 막혀도 뚫려도 느긋하게 가시라. 기다리는 부모님 애타지 않게.

 

 

2006년10월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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