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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박태관 카이스트교수. 노모는 어이 하라고..

앤 셜 리 2011. 4. 14. 14:22

박태관 카이스트교수 54세
미국 워싱턴대에서 생물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박 교수는 미국 템플대 조교수와 중앙대 조교수로 재직한 뒤,
1996년 9월 카이스트(KAIST) 교수로 부임했다. 50세였던 2007년에 이미 테뉴어(Tenure·영년 교수직) 심사를 통과했고,
지난 1월 '올해의 카이스트인 상'을 받았다.
2009년 4월에는 미국 생체재료학회가 주는 클렘슨상(Clemsen Award)을 수상했다.
생체재료 분야 세계 최고 학자들에게만 주는 상을 미국인이 아닌 연구자가 받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박 교수는 지난 2008년 7월 새로운 항암(抗癌) 물질을 개발해 쥐 실험에서 항암효과를 입증했으며,
이 연구결과가 약물전달 분야의 국제학술지인 '저널 오브 컨트롤드 릴리스(Journal of Controlled Release)'의 표지 논문으로 게재된 바 있다.
지난해 열린 '2010 세계해양포럼'에서는 홍합과 도마뱀 등 생물에서 추출한 물질을 수술용 봉합실로 사용하는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외 지난해 2월에는 221건에 달하는 SCI(논문인용색인)급 논문 등 연구성과를 인정받아 카이스트의 '최우수 교수'에 꼽혔다.
당시까지 기록된 논문 피인용 횟수는 6340회에 달했다. (네이버에서 정보 가져옴)
 
10일 전민동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목매 자살이유는 연구비 1억 원 중 2200만 원 유용 조사받다 중징계받은 충격으로 저 업적의 자존심이 극단적 선택을.. 한 거라고 나는 생각해 본다 인간의 자리 부질없는 자리 가릴 곳 없는 회오리 들판(교수들은 통상 자신의 연구실에 더 많은 학생을 받기 위해 '랩(LAB) 비'라고 알려진 연구실 기금을 마련해 학생들의 등록금을 대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스승은 정신의 어버이고육체의 어버이는 부모님이지만 인간은 정신의 부모가 때로는 더 소중 할 수 있다는데 정신의 어버이를 잃은  제자들 심정은 어떨지 짐작된다.
아버지(미할리스대장) 카잔차스키를 선생에게 맡기며 <이 애의 뼈는 내 것이지만 살은 선생님의 것입니다. 불쌍하다 생각 마시고 남자 만들어 주십시오> 움켜쥐고 있던 자식의 손을 선생에게 넘겨주었다고 카잔차스키의 "영혼의 자서전"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자식이 스승을 잃은 것도 한없이 안타깝지만 사회에 큰 역량을 놓치고 국가의 재산을 잃어버린 심정이다.  
조선일보 사회면 아래에 실린 제자들의 추모문 박태관 교수님 사랑합니다 고 박태관교수님은 훌륭한 과학자이자 교육자셨습니다 학문의 열정이란 무엇인지 몰두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지 가르치는 대신, 스스로 보여 주셨습니다 누구보다 학생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스승이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기에  눈물 나도록 그립습니다. 선생님!- 우리 교수님을 최고라고 생각하는 제자일동
 
죄가 삼천가지라도 불효보다 더한 죄가 없고 불효가 삼천가지라도 부모 앞에 죽는 것보다  더 큰 불효가 없다 했는데...
 
분당 장례식장에서 다른 가족들은 슬픔이 잦아지는데 노모인 어머니는 없는 기운에 몸부림치며 한없이 우시더라는 얘기에 아, 그렇구나~ 자식은 죄를... 불효를 할지라도 부모 앞에 가면 안 되는구나 더구나 생목숨을 끊어놨으니... 하늘을 닿을 죄를 져놓고 혼자만 편하게 갔구나 나쁜 사람!!  그리고 아까운 사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박태관박사님의 제자인 조경철 어머니가
◆ 교수 대표 조철오 교수의 조사

나보다 연부역강 한 그대가 언젠가 내 무덤에 술 한 잔 따라 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오호통재라, 아깝고 불쌍하고 그리고 슬프다.

내가 그대의 마지막 가는 길에 눈물을 뿌리다니 박 교수, 여기는 당신의 꿈과 정력을 불태우던 실험실 앞. 그대를 사랑했던 가족 친지 동료 학생 다 모였다. 왜 아무 말이 없는 게야? 그 재치, 그리고 뇌쇄적 미소는 다 어디에 두고 훌쩍 가 버린 거야?

돌아가신 박태관 교수는 생체조직공학, 약물전달학, 유전자치료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쌓아온 세계적 석학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를 읽은 슬픔 속에서도 그가 남긴 훈훈한 인간의 향기, 면도날 같은 논리, 복잡한 개념을 쉽게 조명할 줄 아는 탁월한 슬기를 회상해 보며 우리 잠시 그를 잃었다는 슬픔을 잊게 됩니다.

박 교수! 그렇게 힘들었나? 그새 얼마나 많은 번민의 날을 지새웠소. 미안하다 그러나 그대가 생각하고 또 생각한 그 길을 누가 뭐라 하겠나. 잘 가게 박 교수. 오늘은 날도 화창하네. 그대는 가도 현숙한 아내와 총명한 아들 딸이 있네. 우리도 힘닿는 대로 그들을 돕겠네. 또 그대의 뒤에는 그대의 학문을 잇겠다는 후학이 있네. 그들의 행운을 빌어주게.

나그네가 여인숙을 떠나듯이 인생을 하직한다고 한 키케로의 말과 같이 사흘 전 인생을 하직한 그대여! 그대의 그 총명 그 정력을 우리에게 불어넣어 오늘의 난국을 타개하고 카이스트 앞길을 열어주게. 그리하여 이 겨레로 하여금 과학입국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게.

잘 가게 박태관 박사!!!
 
 특별히 수양을 많이 했다는 맹자도 자식 죽음 앞에서는 내가 죽으면 네가 울어 줘야지 네가 먼저 죽으면 어쩌냐고 통곡을 하지 않았던가. 아, 인생은 견뎌내야 되는 것이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이런 일은 너무 잔인해
 
태어나기 이전을 살펴보면 본시는 삶이 없었던 것이고 삶이 없었을 뿐 아니라 본시 형체도 없었던 것 하늘과 땅 거대한 자연으로 돌아가 편히 쉬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해본다
 
친구여 너는 가고 너를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대신 그 그리움만 한 중량의 무엇인가가 되어 이승에 보태지는가 나뭇잎이 진 자리에는 마치 그 잎사귀의 중량만큼 바람 이 가지 끝에 와 머무누나.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지만 삶의 중심에서 나라의 기둥 되실 분이
이렇게 꺽여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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