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나의 이야기

할머니 잘못이 아닙니다...

앤 셜 리 2013. 7. 24. 22:06

할머니 잘못이 아닙니다...

벨을 누르자 할머니가 반갑게 맞이 해주신다
은빛 머리카락과 올이 꼿꼿하게 선 흰 모시 적삼을 단정하게 입으신 95세의 어른이시다


 연세에 비해 건강하신 모습에

"할머니, 건강하시네요 라고 인사를 드리니

  -그렇죠 뭐
 - 사람이 나이가 들면 아퍼야 정상인데 난 왜 아픈데가 없는지 몰라
    이 귀신같은 꼬락서니로 왜 이렇게 오래 사는지 몰라.

건강하신것이 죄인인 양 사시는 분답게  정색을 하고 말씀 하신다 


"할머니! 요즘 유행어가 있어요
"구구팔팔이삼사라구요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만 아프다가 돌아가시는거 말하는거에요"  
-그건 팔자 좋은 늙은이들이나 하는 말이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로 사는

나에겐 해당 되는게 아니에요   

 세상이 재미있어 저절로 살아지는 사람들 얘기지요
그런 사람들은 세월을 거스르고도 싶을 꺼에요 돈 거스르듯이...
 - 난 사는것이 무거운 수레를 끄는것처럼 힘들어요 

" 요즘 노인정엔 안나가세요?
 (.....)
   심심하고 답답하면 가끔씩 나가죠
"운동삼아 자주 나가셔서 놀다 오시지 그래요~"  
- 이날 이평생 운동이라곤 따로 않고 살아도 이렇게 오래 사는데.." 휴~~


 점심을 해놨으니 함께 먹자신다
"아니예요~저 방금 먹고 오는 길이예요
  -아이 나랑 조금만 같이 먹고가!..
" 제가 미리 전화로 말씀 드렸잖아요~
  집에서 점심 먹고 간다고~"
2시에 유치원으로 아이도 데리러 가야되고 해서요
죄송해요~할머니!..
 다음엔 꼭 할머니와 함께 식사 하고 갈께요~
"대신 저와 함께 참외나 깍아 드셔요~"

반으로 자른 참외를 수저로 긁어 어찌나 달게 잡수시던지..  


  -바쁜 양반이 쓸데없는 늙은이까지 찿아 다니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할머니 같은 분이 여기 계신걸 몰라서 못 찿아오지 알면 찿아오는 사람들 많을걸요
전 할머니가 뵙고 싶을때 마다 이렇게 뵐 수 있어서 좋은데요"
그리고 할머니가 저에겐 노후대책의 모델이거든요 


젊으셨을때 할머니는 능력있고 성실한 남편을 만나
가정부가 자릿기까지 떠다 잠자리를 봐드릴 정도로 호강 하셨던 분이었다
그러나 할머니에게는 불행하게도 자식이 없었다 

하지만 한달에 쌀 몇가마를 먹을 정도로 이웃들이며 집안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그만큼 덕이 많으신 분이었다


어느해 종친들의 모임에서 집안 조카를 양자로 입양하라는 의논이 있은후
조카자식을 호적에 입적을 시키고 할아버지 늙으막에 사업체까지 물려 주었다
그때도 할머니와 알고 지낸 나는 재산 한번에 물려 주시면 안된다고 말렸는데도
" 아니예요~ 위에서 잘하면 밑에사람은 저절로 잘하게 돼 있어요~" 하시면서
할아버지가 돌아 가시자 양자에게 몽땅 재산까지 물려 주신후 할머니의
불행은 시작.
산전수전을 격지 않은 분이라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순박한 분이셨다. 


이 후,
며느리의 구박은 시작 되었고 한집에서 밥도 따로해서 먹고 어쩌다 증손주가 놀러와도
아기 함부로 만진다며 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게 하여 기막힌 세월을 보내시다
아들에게 사정사정해서 이천만원짜리 원룸을 얻어서 나오시게 되었다
 

조그만 원룸에서 내발등 내가 찍었다며 가슴을 치면서도 산목숨 살아야 되니까
재래식으로 콩나물을 길러 팔으셨다
(이때 판로는 내가 맡았는데 한번 먹어본 사람은 콩나물 나올때마다
챙겨 달라는 부탁이 줄을 이었었다)


물을 주기 위해 밤잠을 설치셔도 까만시루에 소복하게 올라오는 샛노란 콩나물들이
자라는 재미에 용돈도 벌어 쓰시며 바보 같았던 자신을 잊어 가고 계셨다

그것도 복이시라고 원룸 주인의 은행 부도로 집이 경매로 넘어가 버렸다
전입신고를 안해놓은 할머니는 고스란히 이천만원을 한푼도 못받고 나와
그 지옥 같은 아들 집으로 다시 들어가셔야만 했다 


한달 용돈 오만원에서 정부에서 노인수당 삼만원 나온다고 이만원으로 깍아도
오래사는 내가 죄인이지 하시며 작은 쪽방에 갇혀  모진 세상을 살아 내시는 할머니
내 앞에서나 응석겸 저렇게 말씀 하시는거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노인이심에도 자세도 곧으시고 말씀도 단정하신 분이시다 


몸은 개천에 계신듯해도 마음과 정신만은 용상에 계신 자존심 강한 분이 
나이들었다는 이유로 천대 받으시는 할머니가 안타까워
나는 가끔 할머니를 찿아뵙는다
나도 코앞인데 하며... 


자식에게 재산 미리 물려준거 할머니께서 잘못한게 아니라고 시대가
그런것이라고 위로도 해드리며 약간의 용돈과 노인정에 가셔서 시간 보내고 오시라고
돼지 저금통에서 나온 동전을 한아름 안겨드리고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늙으니까 눈물도 안나와 하시며 오랫동안 그자리에 서서

안보일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셨다.
또 뵈러 올께요~
안녕히 계세요.

** 요즘 사회에 이런 노인분들이 많으실것 같습니다
    세상 변한걸 모르시고 순박한 옛날 사고방식에 충실하셨던 이런 분들에게
    어떤 위로를 드려야 할까요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인호 작가님  (0) 2013.09.26
꽃 한조각<능력>  (0) 2013.08.17
유년의 햇살<하윤이와의 일기>  (0) 2013.05.30
상견례  (0) 2013.04.15
이 사람아~  (0) 2013.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