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책.

ㅡ모독(冒瀆)1

앤 셜 리 2023. 7. 31. 15:38

(모독)冒瀆무릅쓸 모.
  <견디다. 이기다>
도랑독 瀆 <작고 좁은 개울> 박완서 티베트 여행기..
너무 자주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바람에 구박도 받아가며,

그러고는 매일같이 코피를 흘리고 다닌 시인을 생각하면 지금도 안쓰럽다. 민병일 그에 대한 안쓰러움이 없었다면 아마 이 여행기는 쓰지 못했을 것이다.
김영현이 웃겨주지 않았으면 무슨 수로 그 혹독한 산소부족을 견되어 냈을까. 그는 우리에게 살아있는 산소통이었다.
1996년 가을에 박완서..

박완서 작가님은 "향수"란 노래를 좋아하셨다.
그 노래를 들을라치면 소녀처럼 살포시 턱을 받친 채 노래의 감흥에 젖곤 하셨다.
노래의 날개 위에 피어나던 선생님의 박꽃 같던 미소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작가는  낯익은 세계의 풍경을 낯설게 보여주는 언어의 연금술사다.
예순다섯의 선생님이 고산의 부족한 공기와 날카로운 햇빛, 거친 바람, 변변치 않은 먹을거리와 잠자리를 감수하고, 멀고 먼 길을 돌아오는 여정이었으니 말에 무엇하랴 돌이켜보니 티베트에서의 시간들은 묘하게도 우리 생에 낀 모독을 걷어낸 날들이었다. 빠른 속도를 먼지처럼 만드는!

한작가의 생애가 정지된 낯선  시간 속에서 그이를 추억하는 것은 고독한 일이다
그것은 누군가의 숨결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그이의  손을 잡던 온기와 몸짓, 걸음걸이, 옷매무새, 미소, 사소한 버릇까지 기억해 내기 때문이다.

그리움을 빚는 문학.
시든 소설이든 문학이란 예술은  그리움을 빚는 공간이다.

티베트 하늘의 푸르름 앞에서 "나의 기억 이전의 하늘이었다"라고 고백

지상의 모든 것은 시간의 속절없음 앞에서 사라지게 마련이다.
인생이 그렇고 사랑이 그렇지 않은가.
우주에서 푸른 별이 빛나는 한, 문학과 예술이 꽃과 나무와 공기처럼 존재하는 한, 티베트가 지워지지 않는 한 모독은 항상 남아 있지 않을까 그것이 문학의 은유가 주는 힘이지 않을까. 어느  날 생애  모독이 찾아올 때, 하여 가슴에 묵직한 바위가 놓인 것처럼 답답할 때, 삶의 속도ㆍ 생의 시간을 추월할 때 친구여 모독을 펼쳐보시길!

. 민병일 사진작가.

가슴 시릴 만큼 새파란 하늘.
사색에 잠긴 얼굴, 두 손을 가지런히 맞잡고 묵상하듯 고개 숙인 채 호숫가를 산책하는 선생님(박완서)은 수도자 모습이다.
작가로서의 품격과 인간적인 소박함이 순간에  담긴 참 아름다운 사람 풍경이다.

기억은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회상의 방법으로 사진은 살아있는 자의 가슴을 찌르는 방식으로 누군가와 나눈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슬픔을 증언한다.

체질상 고프기도 잘하고 부르기도 잘하는 나는 배 속이 무두질을 하는 것처럼 쓰렸다.


해발 5.200미터의 티베트인, 자국의 문화나 풍습에 대해 어떤 열등감이나 우월감도 없이 담담했다 느긋하고 근심 없고 충족된 표정으로 잘 웃었다.
수양이나 투쟁으로 얻은 것이 아닌 천성적인 자유스러움이 보기에 참 좋았다

. 우리들은 단아하고 조촐한 석탑과 싸리빗자루 자국이 정결한 뜰과, 주변산천의 수목과 항불 냄새가 어우러진 그윽한 향기와, 허심 한 목탁소리는 찾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하며, 속세의 욕망이 부끄러이 숨죽이는 깊고도 쓸쓸한 정적의 순간을 응시하게끔 만든다. 이렇듯 절이란 무상무념 무소유등 무의 기품이 숨 쉬는 장소라는 게 비단 불교도뿐 아니라 대부분의 우리 민족의 심성에 새겨진 절의 인상이다.
티베트 여행기 46페이지

티베트절은 참배객이 바치는 게 향이나 초가 아니라 버터기름이라서 그런지 우리의 절과는 공기부터가 다르다. 강력하고 누릿한 동물을 태우는 냄새에 가깝다. 그들이 바친 기름은 커다란 양동이 같은 그릇에 합쳐서 그 안에 수많은 심지를 꽂아놓고 온종일 태운다.

인간에게 있어서 종교적인 열정처럼 불가사의한 심연도 없지 않을까.
높고 독특한 정신문화는 강력한 군사력 이상으로 정복하기 힘들다는 본보기처럼 티베트는 고독하고 의연하게 여기 존재하고 있다.
달라이라마가 있는 포탈라궁은 방이 999개 13층이나 되는 높은 건물 철근이 하나도 안 들어가고 돌과 나무만 가지고 지은 고층건물이 300여 년 동안 끄떡없이 유지되는 걸로도 세계적인 불가사의에 들서간 다는 안내원의 말이다.
달라이라마 14세는 현재 인도에 망명해 있다.


농촌에 들어서니 흰 벽을 야크똥스로 덧 입혀놓고
아무 데나 보라 빛붓꽃이 무리 지어 피어 있고 밭둑엔 토기로 된 물통을 진 남자가 느리게 걸어가는 목가적인 마을이었다.

아주머니는 생색내는 티 없이 무던한 표정으로 우리가 집안까지  들어가 보는 걸 허락해 주었다

합환 하는 남신 여신의 표정에 나타난, 곧 둥실 승천할 것 같은 도취의 경지도 해탈 순간의 정신적 환희의 극치를 성적 쾌락의 극치감에서 유추한 거라고 해석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짐승의 마른 똥은 땔감으로 이용되고 인분은 거름으로 비료로 집집마다 퇴비 변소가 있고 모든 쓰레기는 재순환된다.

쓰레기 문제로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티베트의 공기와 환경을 볼 때질식 전에 숨통을 터주는 한 가닥의 청량한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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