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창작

비오는 날의 단상

앤 셜 리 2024. 12. 25. 10:30


비 오는 날들의 단상

                서정임


하루종일 흐리멍덩한 하늘
하루종일 찌뿌둥한 하늘
하루종일 골 부리는 하늘  
하루종일 잘 참는다 했더니

저녁나절
그만 울음보를 터트리고 말았다
....................................


소낙비

햇볕이 거침없이 내리쬐던 날
시골길 지날 때
회초리 같은 소낙비가 쏟아졌다.
마른 흙밭에서
훅! 농약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몇 년 후, 보약으로 변신할 인삼밭이다.
보약일까? 독일까?
.................................

여우비

비 오다 햇빛 나다
호랑이 시집가는 날.
언덕배기 일곱 빛 고운 무지개
하늘에서 보내준 축복의 언어인가.
..................................


  비 (폴 세잔)

채찍 같은 빗발 속에서 자연의 조화가(색조)
어떻게 변하는지 비 맞으며 버티다
폐렴으로 칠일만에 세상 떠난 세잔느여
그대가 천상에서 춘하추동 아름다운 절경을
지상에다 그리고 있는 주인공인지요.
.................................

비(장마 때)

비만 오면
나는 유년 시절로 달려간다
산도들도 흥건할 때
하천 둑  미루나무 가지
꺾어다 조물조물
하얀 속살 빼내면
삐리삐리 삐리리
악기가 된다
어린 딸 입 거칠세라
곱게 다듬어 주시던 손길

삐삐~ 삐리리~~
울 아버지 생각이 난다.



손목 잡힌 날

울적하거나 마음 치유받을 일 있으면 배낭 하나메고 서울대학 가는 121번 버스 타고 혼자라도 자주 가는 관악산.
어느 날 예고 없이 쏟아진 소낙비에 산에 갇혀버린 나.
여기저기 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살로 흙살을 조금씩 파먹어 바다가 되어버린 산속의 물 길. 어서 내려가자 서둘렀지만 하나둘하나둘 건너던 징검다리는 어느새 묻히고
황토물이 우레와 같은 소리를 지르며 쿨렁쿨렁 넓은 산천을 채우고 흘렀다. 바지가랑 높이 접고 발을 떼야하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나며 어질어질했다 여길 건너야 내려가는데 망연자실 서있는데 누가 뒤에서 대짜 고자 내 손목을 덥석 잡더니 지체 없이 물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보폭도 짧고 뒤쳐지는 나는
끌리듯 물길을 헤쳐 무사히 건너왔다.
손목을 놔주고는 남자는 뒤도 안 돌아보고 저벅저벅 앞서 간다. 나는 멀어져 가는 사람의 뒤통수에 대고 고맙습니다라고 소리 질렀다. 대꾸도 없이 멀어져 가는 상남자!.
천둥 같은 물소리에 들었을까 모르지만
두고두고 고마운 손길.

지금은 그림같은 멋진 다리가 생겨 하늘과 산과 나무를 감상하며 건너도 된다. 나는 이 다리를 건널 때마다 그때 그사람, 손목 잡아 주던 분이 꼭 생각난다.
생색내지 않는 사람들이 오는 곳.
그래서 나는 산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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