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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대 교수의 `임방울論` “그는 20세기 초반의 조용필이었다”

앤 셜 리 2010. 6. 3. 17:02
유영대 교수의 `임방울論` “그는 20세기 초반의 조용필이었다” 이미자와 조용필이 20세기 후반 한국의 대표적 가수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20세기 전반기 예술계에서, 이들에 필적할 만한 두 사람의 소리꾼을 들어보라면 누가 거론될 수 있을까? 마땅히 임방울과 이화중선을 꼽을 만하다. 특히 임방울이 부른 대표적인 노래 ‘쑥대머리’는 당대를 풍미하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음반이었다. ‘쑥대머리’란 흔히 ‘봉두난발’이라고도 표현하는데, 빗질을 하지 않아 쑥대처럼 헝클어진 머리를 나타낸 말이다. 변학도의 수청을 거절해서 곤장을 맞고 옥에 갇힌 춘향이의 거칠면서도 참담한 모습이 이 노래의 정황이다. 노래의 첫 대목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寂寞獄房) 찬 자리에 생각난 것이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낭군 보고지고.” 춘향이는 이도령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血書) 편지를 쓰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 춘향이는 울고 있다. 이 울음은 그리움으로 애간장이 썩어 나오는, 주체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눈물로 서울 간 이도령의 얼굴을 그려보겠다고 말한다. 임방울이 이 노래를 1930년대 여성 청중 앞에서 부를 때면 그 자리는 눈물 바다가 됐다. 임방울은 무대를 장악하는 능력이 뛰어난 예술가였다. 그는 서민 청중을 대상으로 평이한 사설과 아니리를 채용해서 청중에게 다가갔다. 판을 장악하는 현장감 넘치는 판소리 언어는 청중의 정서에 깊이 침투하는 효과적인 장치가 된다. 서민적인 발랄함을 표출하는 대목에서 임방울의 예술은 빛을 발휘했다. 임방울은 슬픈 계면조 소리의 대가였다. 비통한 분위기를 짙게 표출해내는 계면조는 식민지 백성의 원망과 상승 작용을 하면서 절망적인 시대를 표현해내는 예술이 됐다. 임방울의 계면조 가락은 당시 조국의 슬픔을 직설적으로 표출해내는데 적절하게 조응하면서 민중의 소리로 인식된 것이다.